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후에'는 이야기를 전환하기 위한 표현이다. 요한복음 6장과 7장 사이에 기간은 6개월 정도 된다. 근거는 2절에 초막절이라는 말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절기는 유월절(4월 무렵) 이다. 그런데 초막절은 10월경에 해당한다.
그 6개월 사이에 있는 기간은 이야기하고 있지 아니한다. 그런데 유월절과 초막절 사이에는 주목할 절기 하나가 있다고 한다. 유월절부터 7주가 지나서 오는 칠칠절(오순절) 이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이 유대인의 절기는 농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강의 내용에선 길지만 짧게 정리하면, 먼저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가 유월절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출애굽을 상기하기 위한 절기이기도 하다. 칠칠절은 무화과와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는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이다. 농사 절기가 민족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 나팔절 그로부터 10일 후에는 대속죄일 그리고 닷새 후가 초막절이다.
출애굽기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초막절은 대추야자를 수확하는 시기이다. 초막절은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과거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이다. [출애굽기(13:21) ]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다녔던 이들이다. 그들은 광야를 잊지 않기 위해 초막절에 초막을 짓는다. 그리고 광야의 생활을 기억하고자 한다.
유대인이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안다. 위기를 감지하고 예수님곁을 많은 사람들이 떠난다. 우린 예수님이 죽음따위는 두려워 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죽음 따위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아닌 때를 기다리는 분이시다. (요한복음7:6)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의 형제들이 나온다. 7장 3절에서 5절의 내용은 기왕 세상에 몸을 드러낼 것이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멋진 일을 보여달라는 이야기다.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종교인들을 타락시키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을 근사하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요즘 같은 SNS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본질적인 것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 주어야만 기분이 좋다. 우리는 칭찬의 허망함을 알아야 한다. 칭찬에 따라 일희일비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칭찬받길 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칭찬에 몰두하는 사람은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고 한다. 이렇게 칭찬이라는 것에 몰두하게 되면 군자와 같은 태도를 보이면서 정작 사회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형제들이 이미지 관리를 권유한다. 형제들조차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강의에서는 일상에서 우리가 안다는 것은 오히려 모르는 것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랑의 본질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내가 점점 알아가는 것이 사랑이다.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무지를 알아차리고 알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내 때와 너희 때가 구별된다. 나의 때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보내신이의 소명을 완수할 때이다. 죽음의 때는 소명을 완성했기에 영광의 순간이기도 하다.
진짜 영광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민칠때이딘. 영광은 누구에게 받는것이 아닌 내게 내주신 숙제를 완성 즉 내가 실현해야할 과제이다.
내 때 (즉 사명 완수를 위한 예수님 삶)과 달리 우리에게 너희 때라고 이야기한다. 너희 때는 일상 즉, 욕심 욕망에 따라가는 시간이다.
알아가려고 노력할 때 더욱 사랑스러움은 이와 같은 애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할 때, 더욱 상대방을 알아가고자 해봐야 겠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게 이야기해 본다.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 때를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세상이 미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를 닮고 세상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세상은 불편해한다. 세상을 따르는 이들은 어쩌면 길들여진 이들이다. 동화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기들여진 사람은 세상에 위험하지 않다. 세상이 원하는 사람은 욕망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선사해 주고자 한다. 일상의 평온함을 깨뜰인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은 세상에서 불편하다. 낯선 존재이다. 주님이 미움 받으신 것은 세상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는 거 같지 않은지 생각해보게된다.
그들이 한심하다고 볼 떄도 많은 거 같다....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나아갈 때와 머물 때를 아시는 분이신 예수님이시다. 때때로 예수를 따라다니는 이들을 실망하게 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 목적이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였다.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0절에서 볼 수 있다시피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움직이는 예수님이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예수님 본인을 드러내라고 하는 제자들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태도이다.
11.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대게 요한복음에서 유대인이라는 호칭은 주로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사람을 나타낼 때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가 어디있는냐 묻는다. 그런데 이 단어는 헬라어로 미완료시제로 되어있다. 즉 그들이 예수를 찾는 것이 일회성이 아닌 계속 찾고 있는것 이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예수가 위험 해서 감시하려는 시선 이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았다고 한다. 여기서 무리는 체제 밖으로 내몰려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회당 공동체에서 내쫓기거나 가장 아래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무리 중에 수근거림이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수군거림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수군거림이 우리의 영혼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어쨌든 좋은말을 하고 있지는 아니하다. 사람들은 예수님 자체보다 이런 수근거림에 휘둘리기 쉽다. 군중들의 속성이다.
13.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무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중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래 약자들은 강자들에 의해 내가 생각하는 주체로서 행동하기 보단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휩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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