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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s bible study

성경에서 말하는 말과 행동에서 참됨의 판단기준

by Pee_Jay 2025. 2. 23.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유대인들의 반응은 '놀랍게 여겨' 이고 두번째 반응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이다.  예수님 당시에 학교 제도는 없었다. 교육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이다. 예수님께서 랍비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기에 사람들을 글을 모를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학벌 중심 사회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닐까? 덧붙여 학벌보다는 더 넓게 스펙 중심이 되는 모습인 거 같다.  잘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혜의 말은 학벌과 스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의 언어는 아니지만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의 말은 인생에서 나올 수있다.  예수님이 만약 그당시 유명한 학파 출신이라면 사람들이 우와~~ 할 것이다.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6절은 하나님이 넣어주신 말이라는 의미이다.  17절은 예수그리스도 하신 말씀에 참됨 그릇됨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데 말씀대로 살려는 자는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대게 사람들이 말할때는 자기의 영광을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수행되길 바란다는 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이 드러나길 바라는 말을 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사야 50:4



 
 해야할 말도 일러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그리고 귀 담는 말을 알려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어떤 말에서 참되고 그릇됨에 근거는 무엇일까? 그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인지 보면 알 수 있다. 삶으로 반영되지 않은 종교적 지식은 교만이 다. 삶으로 살아가는 말씀은 사람을 평안하게 만들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습록에는 위와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즉,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아직 모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 내용에 대해서 알지만 살아내지 못하는 것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삶이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잘 배워야 한다. 말씀을 잘 배우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한다. 듣고 묻기만 하는 것을 넘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분별을 할 수 있다. 분별을 통해 내 뜻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행할 수 있다.

 

 삶 전체에 있어 나아감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더 나아가 생각해 본다. 앞으로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고민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을 고민하는 것인지... 혹은 나 자신을 더욱 더 드러내기 위한 고민인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말씀을 통한 배움이 지금에 나에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거 같다.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너희가 율법 지키는자 없다라는 말은 유대인에게 억울한 말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잘 지켰는데 왜 그런걸까? 문자는 지켰지만 문자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읽지 못했다.


마태복음 5장 속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자. [ 21절~22절 : '살인하지 말라'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을 사랑하라 라는 의미이다. 즉 마음에 상처되는 말을 하는 것은 생명을 다치게 위축되게 하는 것이다.] / [ 28절 : 외적인 행위는 없었지만 예수님이 보기엔 간음이다. 목적 그 자체여야 하는데 인간을 수단으로 본다. 인격이 아닌 물건으로 인간을 대하는 것에 대해 지적한다. ]

 이런 이야기를 하는 예수님에게 20절과 같이 귀신이 들렸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정상이 아닌 자로 몰고 간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것이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는 악습이다.
 사람에게 색을 입힌다.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끊임없이 죽일 이유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건 아닌 지 생각해 본다. 특정인을 비정상범주로 범위화해서 바라보면 안된다. 인간의 말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인간은 언어를 바꿀 때 마음도 바뀐다.

회사 생활에서 최근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특정인에 대해 색을 입히고 있는건 아닐까?
그런데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나는 그 사람이 이렇다 라고 마음속으로 단정짓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나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되돌아본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수님 당시에는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이건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숙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한 한가지 사례 중에 하나가 할례 율법과 유대인의 율법이 충돌하는 경우였다. 대표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를 해야 했다(창세기 17:12 )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수술을 할 수 없어 안식일 법을 지켜야 할 지 할례를 지킬 지는 큰 문제였다.

그들은 한 가지 해결책을 내놓았다. 할례 율법이 모세 이전 율법보다 우선이기에 할례가 먼저이다!

 

 근본적인 말씀에 관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창세기에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생명을 살리는 근본적인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어긴것으로 보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에 대해 그 근본적인 주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깊게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질문이 없었기에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그저 주어진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신앙생활에서 내가 요즘 묻고 답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것들에 대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허물고 있는 예수를 귀신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안식일을 어겼다고 예수님은 꼭 죽어야 할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외형(스펙)만 보고 예수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목수일 뿐이었다. 목수 일로 거칠 었을 예수님의 손에서 기적이 얼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외모를 보고 예수를 평가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지 못하고 무지하다.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예수의 출신을 안다고 하는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본인이 보냄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 목수, 배운거 없는 사람일 뿐인 예수님이다... 즉 모두들 예수님을 스펙으로만 본다. 그들은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의 출발점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끝까지 알아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에는 이런 편견의 비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 오늘날 삶에서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정말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편결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열심히 배워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질문하고 분별하며 행하여야 한다.

 

(성서학당 김기석 목사님 강의를 보고 나눕니다.)